충무공 생애와 업적
충무공 이순신은 1545년 음력 3월 8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1576년(선조 9) 식년무과(式年武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권지훈련원봉사(權知訓練院奉事)로 처음 관직에 나갔으며, 1592년(선조25년), 일본의 침입으로 발발한 임진왜란에서 수군을 이끌고 해전에 참가, 전 해전에서의 승리로 7년 간의 전란을 종식시키는데 크게 기여한 명장이다. 충무공은, 대대적인 벌목 조선으로 전선을 증강시키고, 거북선 및 정철, 지자, 현자총통 등 신형 전선과 무기를 개발하여 왜란 전부터 조선 수군의 전력을 확충하는데 크게 기여해왔다. 뿐만 아니라 각종 해전술을 창안하고 명령계통을 일원화하여 조선 수군의 강력한 전투력을 배양했으며, 한산도에 과거장을 설치하여 군 인사 관리를 혁신, 무기체계 외에도 군 운영의 발전을 추구하여, 전쟁기간 동안 왜선 700여척을 나포, 격침시키는, 세계 해전사상 길이 남을 전과를 거두었다.
주요 해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옥포(玉浦)에서 적선 30여 척을, 사천(泗川)에서 거북선을 처음 사용하여 적선 13척을 격파했다. 당포(唐浦)에서 20척, 당항포(唐項浦)에서 100여 척을 각각 격파했으며, 7월 한산도(閑山島)에서 적선 70척을 무찔러 한산도대첩(閑山島大捷)을 이끌었다. 7월 안골포(安骨浦)해전에서 승리하고, 9월 왜군의 근거지 부산에 쳐들어가 100여 척을 침몰시켰다. 1593년(선조 26) 다시 부산과 웅천(熊川)의 왜군을 격파하여 남해안 일대의 제해권을 장악했다. 명나라 수군이 원정을 온 후, 죽도(竹島)에 진을 옮기고 장문포(長門浦)에서 왜군을 격파, 서해안으로 진출하려는 왜군의 작전에 큰 타격을 가하였다.
정유재란 발발 후, 삼도수군통제사에 재임명 되어, 명량으로 출전, 12척의 함선으로 133척의 적군과 대결, 31척을 격침시키는 기적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이듬해 철수에 돌입한 적선 500여 척이 노량(露梁)에 집결하자 명나라 제독 진인(陳璘)의 수군과 공동으로 적군을 기습, 승리로 이끌었으나 충무공은 이 해전에서 전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