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보고 대사의 생애
장보고 대사는 8세기 말 완도에서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무예에 출중하고 수영에 능숙했던 그는 20세를 전후하여 당나라로 건너가 서주(徐州)의 무령군(武寧軍)에 입대, 819년 산동지역, 평로치청(平盧淄靑)의 반란 진압시 전공을 세웠으며, 30세에 무령군절도사(武寧軍節度使) 휘하 소장(小將)으로 승진하여 군인으로 활약하였다. 이후, 당나라의 반란진압 종료에 따른 군대감축에 압박을 느끼고, 남, 서해를 중심으로 해적이 들끓고 이들의 신라인 납치 및 노예매매 행위에 분개하여 신라로 귀국한다. 828년, 국왕의 지원으로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하여 해적을 소탕하고 국제무역을 주도, 막대한 부를 축적하며 동북아시아를 제패한 해상무역왕국을 건설하여 신라가 해양세력의 주도권을 잡는데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왕위계승 분쟁에 휘말려 자객에 의해 암살당하는 비운을 맞게 된다.
장보고 대사의 업적과 의의
장보고 대사는 조직적인 함선세력으로 해적을 소탕하여 신라의 백성들을 보호했고, 이를 기반으로 신라와 당, 일본의 삼각무역을 주도했으며, 중국 남부지역에서 이슬람과의 중계무역을 개척하였다. 한편, 신라방, 신라촌 등의 재당 신라인의 무역을 조직화하여 교민들에게 모국(신라)에 대한 자각을 일깨워주었고, 활발한 해양활동으로 신라의 조선, 항해기술 발전에 기여했다. 이러한 장보고 대사의 활동으로 우리 민족은 동아시아에서 최초로 해상질서를 확립할 수 있었고, 해상 무역을 통해 부를 축적하고 상업자본가의 출현을 촉진시켰을 뿐만 아니라 국민의 진취적인 해양사상을 고취시킬 수 있었다.